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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世 경산현령(慶山縣令) 휘(諱) 효경(孝卿)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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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世 균(筠)→9世 유의(惟義)→10世 호(湖)→11世 양생(良生)→12世 구(矩)

- 13世 경산현령(慶山縣令)휘(諱) 효경(孝卿)公 墓 全景 -
公은 동래정씨(東萊鄭氏)의 시조로 안일호장(安逸戶長)을 역임한 정회문(鄭繪文)의 후손이며, 호장(戶長)을 역임한 정지원(鄭之遠)의 13세손이고, 고려 상서좌복야 휘 목(穆)의 후손이다. 조부(祖父)는 봉원부원군 감찰대부(監察大夫)를 역임한 정양생(鄭良生, ?~1392)이며 부(父)는 의정부 좌찬성 설학재 휘 구公이시다.
公의 전배(前配)는 예조참판 이유의 딸 공인(恭人) 여흥 이씨며, 후배(後配)는 공인(恭人) 칠원 윤씨이며 자(子)는 고양군수 증 형조참의 휘(諱) 수(穗)公이시다.
公의 벼슬은 경산현령(慶山縣令.종5품)이다. 公은 부모에게 효심(孝心)이 지극(至極)하고 형제와 우애(友愛)가 깊으셨고, 지조(志操)가 크고 흔들림이 없으시고 성품(性品)이 높고 굳세어서, 세상과 서로 맞지 않아 공명(功名)에는 뜻이 없어 고려(高麗)가 망하자 절개(節槪)를 지키고 출사(出仕)하지 않으셨다.
구전(口傳)으로 전하기를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니 분토산(分土山)에 장례(葬禮)를 모시고 하는 수 없이 유언(遺言) 때문에 경산(慶山)으로 잠시 내려갔다가 사직(辭職)하시고
본가(本家)는 후배(後配) 칠원 윤씨와 아들 수(穗)公 에게 맡기시고 전배(前配) 여흥 이씨가 어머니(水原 崔氏)에게서 유산(遺産)으로 물려받은 화성 송라동(松蘿洞)에서 말년(末年)을 보내셨다고 한다.
公의 묘(墓)는 송라리에 여흥 이씨와 합부(合祔)로 모셔져 있으며, 서울 망우리 분토산에 모셔져 있던 칠원 윤씨 묘(墓)는 도시 계획으로 2014년 9월 30일에 송라리에 있는 公의 묘(墓) 옆으로 천장(遷葬)하여 모시고 있다.
公의 절개(節槪)와 효(孝)의 정신을 思慕(사모)하고 그 德(덕)을 오래 동안 記憶(기억)하기 위하여 후손(後孫)들이 마음을 모아 齋室(재실) 모원재(慕遠齋)를 2000년 11월 17일에 建立(건립)하여 13世 諱 효경 현령公 . 15世 諱 인영 진사公 .16世 諱 은 계공랑公. 17세 諱 사안 장사랑公. 19世 諱 석기 사복시정公. 20세 諱 희 좌승지公의 位牌(위패)를 모시고 음력10월 5일에 祭(제)를 올리고 있다.

- 모원재(慕遠齋) 전경(全景) -

- 경산현령(慶山縣令)휘(諱) 효경(孝卿)公 묘표-
전면 : 慶山縣令 東萊鄭公 孝卿之墓 恭人驪興李氏祔葬
후면 : 癸丑 十一月 十世孫 世豊 書 (계축1793.정조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