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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萊鄭氏族譜乙酉譜舊序(동래정씨족보을유보구서) 15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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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운진
댓글 0건 조회 3회 작성일 26-05-29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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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을유보구서 1585001.jpg

주해(註解)

동래정씨족보(東萊鄭氏族譜) 을유보(乙酉譜) 구서(舊序) 1585

 

동래정씨(東萊鄭氏)는 고려(高麗) 때 복야공(僕射公)이 처음으로 명신(名臣)이 되고 그 네 아들이 과거(科擧)에 급제(及第)함으로써 벼슬하는 세족(世族)이 되었다. 그 후 보첩(譜牒)이 분명하지 못해 곽숭도(郭崇韜: 오대(五代) 후당(後唐)때 사람으로 연대가 맞지 않는 사람이 인사를 나누었다는 말)가 곽자의(郭子儀: 당나라 현종(玄宗) 때 사람)에 절을 하게 되었다는 비난이 있게 되어 식자(識者)들이 병통으로 여겼다.

하루는 인의(引儀) 벼슬에 있는 흥선(興善)이 와서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 일족(一族)이 비록 큰 문중이지만 계파(系派)가 잘못된 곳이 많아 바로 잡고자 했는데 너무 번거로워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그래 대조 판서공(判書公)의 세계(世系)를 가져다 보건대 그 자손을 모조리 찾아내어 혹 경향(京鄕) 각지의 숫자가 매우 번성했으며 문견(聞見)한 이외에도 다시 내외 여러 일족을 모아 쓰고, 그 가운데 미진(未盡)한 것은 몸소 스스로 따져서 실제대로 된 후에 그만 두었으니 그 마음씀이 참으로 부지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하였다. 이에 재종에 순경(純褧)이 주간하여 통문(通文)을 돌리고 인의가 도모해 편찬해서 년 만에 완간하니 아버지와 아버지, 아들과 아들, 형과 형, 아우와 아우의 차례가 질서 정연하여 조금도 문란(紊亂)하지 않게 되어 참으로 일대(一代)의 훌륭한 보배가 되었다. 내가 일찍이 옛 사람들이 만든 보첩을 보면 혹 한대(漢代)의 연표(年表)를 모방하기도 하고 혹은 대종(大宗)과 소종(小宗)으로 하기도 하였는데 그 사례(事例)는 비록 다르지만 그 씨족(氏族)을 나누고 세차(世次)를 따진 것은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는 남녀의 혼인(婚姻)은 족류(族類)로 하기 때문에 그 성명(姓名)을 일일이 제대로 될 것이다. 우리들은 마땅히 먼저 친근한 자를 말미암아 소원(疎遠)한 자까지 돈목(敦睦)해야만 거의 보첩을 만든 뜻을 저버리지 않게 될 것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력(萬曆) 十三年(書記 一五八五年) 二月

대광보국숭록대부(大匡輔國崇祿大夫) 의정부 우의정 겸영경연사 감춘추관사(議政府右議政兼領經筵事春秋館事) 정유길(鄭惟吉)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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